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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 墨 - (먹장의 호칭)

LONG 글의 나머지 부분을 쓰시면 됩니다. ARTICLE

먹을 만드는 사람을 먹장(墨匠)이라고 합니다.

이런 명칭이 언제부터 시작 됐는지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 문헌부터 등장하기 시작 합니다.

 

장인의 기술에 공(工), 또는   장(匠)자를 붙여서 도자기공, 목공,화장,피장, 등으로 기록이 되어 왔는데

고려와 조선 초기엔 먹을 만드는 장인을 묵척(墨尺)이라 했습니다.

 

척(尺)의 자전적 의미는 자 척, 거리 척, 법 척, 공 척, 등으로 나옵니다.

왜?  ....  다 공,장,이라 칭하는데 먹장만 묵척(墨尺)이라 칭하였는지 궁금해서 문의를 몇군데

해보았지만 뚜렸한 답변이 없었습니다.

내가 민감한 것인지?  쓸때없는 생각인지 몰라도 이유가 궁금 합니다.

 

척(尺)을 사용한 명칭이 조선 초기에 또 하나 나옵니다.

소나 돼지등 가축을 잡는 사람을 조선시대 백정(白丁)이라 했지만 초기엔 화척(禾尺)이라 했습니다.

화척에서 백정으로 바뀐 것이다.

 

묵척에 관한 사전의 글은 없지만 화척에 관한 사전의 의미는 " 버드나무의 수공이나 소잡는 일을

생업(生業)으로 하는 천민(賤民), 뒤에 백정이라 불렀음,  옛날에 연극 ,판소리,곡예 따위를 업으로

하던 사람,광대 "로 나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최하위 신분으로 천민,관노(官奴),사노(寺奴),거란,여진의 귀화한 집단부족 등과

같은 신분으로 노예노동 형태의 장인 들이였습니다.     

 

중국은 먹장들 중에서 유명한 서예가도 있고 소동파 같은 시인도 있고 개인적 취미로 먹을 만드는

사대부 집안도 많았고 묵법집요(墨法集要)같은 문헌엔 먹을 제조하는 그림도 있습니다.

 

조선은 먹을 특별한 날 임금님 하사품으로 주었고 먹은 별납으로 특별 진상품일 정도였는데

장인에 대한 생각(먹장)은 천민중의 천민이였던 것 같습니다.

 

먹은 지금도 비공개 입니다.

중국이나 일본 , 한국도 마찬가지로 중요 작업은 집안의 비밀로 내려오고 그 기술을 전수 받는자는

반드시 각서를 써야 되고 본인도 각서를 쓰고 전수 받았습니다.

 

본인의 공방은 많은 부분을 공개 하지만 항상 기밀유지의 불안감은 떨처 버릴 수 없습니다.

책(尙墨)도 내고 또 하나의 책을 준비하지만 어느 선을 지키는야 하는가 걱정 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먹에 관한 것을 덮어둘 수 가 없습니다.

지금 시중에 나와있는 먹에 관한 책들은 일본의 책을 그대로 직역해서 번역상의 오류가 많고

석박사 논문에 기록된 글들은 일본용어 그대로 써서 이것이 무슨 작업인지? 알지도 못하고

적었습니다.

 

솔직히 먹에 관한 글은 지도 검증해 주는 교수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많고 화학을 공부한 사람이

보자면 엉터리 글도 많습니다.

 

먹은 화학적 지식 없이는 만들 수 없습니다.

아니 흉내를 내어서 만들 순 있습니다.

전통과 장인 하면 그저 옛것을 답습하거나 어깨너머 배운 기술로 얕잡아 보지만 세월의 경험과

지식없이는 도태되고 맙니다.

장인은 생활의 달인이 아니라 그 시대, 그 문화에 맞는 민속공예가 였습니다.

 

간혹 돈벌이로 엉뚱한 사람이 먹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저 주어 들은 풍월로 하려고 하지만 먹은 1000년이 넘게 내려온 (墨匠) 의 恨과 노력,

과학적인 지식의 접목으로 이루어진 공예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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