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아시아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준 것은 총칼의 힘도 물질의 풍요도 아니었다. 눈서리 차가운 추위를 이기는 미학이요, 그 우정이다. 세한삼우(歲寒三友)의 하나인 소나무가 바로 그러한 일을 했다. 추위 속에서 따뜻한 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소나무지만 그 추위의 특성이나 차이에 따라 중국의 송(松), 한국의 솔, 그리고 일본의 마쓰(まつ)가 제각기 다르다.
무엇보다 소나무와 한국인의 관계가 그렇다. 소나무를 보면 울음이 나온다고 쓴 적이 있지만 소나무만큼 한국인을 닮은 나무도 이 세상에 없다. 태어날 때는 솔잎을 매단 금줄을 띄우고 죽을 때에는 소나무의 칠성판에 눕는 것이 한국인의 일생이다. 하지만 그 쓰임새보다도 소나무의 생태와 형상 그 자체가 한국인에 더욱 가깝다. 풍상에 시달릴수록 그 수형은 아름다워지고 척박한 땅일수록 그 높고 푸른 기상을 보여준다.
기암창송(奇巖蒼松)이니 백사청송(白沙靑松)이니 하는 말 그대로 다른 식물들이 살지 못하는 바위와 모래땅에서 소나무는 자란다. 삭풍 속에서 모든 나무가 떨고 있을 때 소나무만은 거문고 같은 소리를 낸다고 하여 옛 시인들은 ‘송뢰(松籟)’요, ‘송운(松韻)’이라 불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 기억 속의 소나무는 거문고 소리가 아니라 아이들의 비명과 비행기의 폭음 소리를 냈다. 비행기 연료가 되는 쇼콩유(松根油)를 채취하기 위해 소나무 뿌리를 캐 오라는 동원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200그루 소나무면 비행기는 한 시간 난다”는 구호 속에서 아이들은 책을 덮고 송진을 따러, 소나무 뿌리를 캐러 산으로 갔다.
바위를 굴려 산꼭대기에 오르는 시시포스의 노동보다 더 무익하고 힘든 노동이었다. 그래도 시시포스의 노동은 산정에서 아래로 내려갈 때에는 빈손이 아니었는가. 그때가 더 괴로운 시간이라고 말한 소설가 카뮈는 솔뿌리를 캐는 노동을 해본 적이 없어서 하는 소리다. 소나무 뿌리는 시시포스의 바위만큼 무겁다. 그것을 캐내는 어려운 작업이 끝나면 이제는 휴식이 아니라 그 무거운 바위 솔뿌리를 안고 내려가는 가혹한 노동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소나무 밑에서 바둑을 두고 시를 읊던 풍류객들을 위해 술 심부름을 하던 동자(童子)들은 지금 ‘대동아공영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그 노송의 밑뿌리를 캐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멀리에서 라디오로 청취하고 있던 미 제20항공대는 시저의 승첩문처럼 이렇게 보고하고 있다. “Dig and Steam and Send(캐내라, 쪄내라, 보내라).” ‘일본에 있어 솔뿌리는 석유의 귀중한 대체연료지만 그것을 캐고 가공해 기름으로 만들기까지는 그 불행한 나라의 대중을 더욱 분발시키기 위한 계획일 뿐’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황당무계한 에너지 기획이라는 것이었다. 전후에 미군이 계산한 것을 보면 솔뿌리 기름(쇼콩유) 1.5L를 생산하려면 한 사람이 온종일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기획량대로 기름을 얻고자 할 때 일인당 약 2000kL의 조유(粗油)를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자면 하루에 125만 명의 노동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당시 증류 가마로는 한 번에 300㎏ 정도의 솔뿌리를 처리하는 데 하루를 소요한다. 이 계획대로라면 약 3만7000개의 증류 가마는 하루에 약 1만t의 소나무 뿌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당시 일본의 소나무 뿌리 매장량은 770만t 정도였으므로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일본 전국의 소나무는 한 그루도 남아 있지 않고 모두 캐내야 한다. 산에서 소나무가 전멸한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는 어땠는가. 『일본해국연료사』에는 “20만kL”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로 정제된 송근유를 완성한 것은 1945년 5월 14일에 도쿠야마에서 처음 생산한 500kL가 고작이었다. 그리고 어떤 공식 기록에도 쇼콩유를 사용한 비행기는 나오지 않는다. 미군이 진주하여 그 기름을 지프에 넣고 시험운전을 한 결과 며칠 뒤에 엔진이 망가져 못 쓰게 되었다는 거다.
어떻게 이런 만화 같은 계획이 일본인·한국인 모두의 힘을 빼고 바보로 만들어 놓았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닫힌 사회에서는 언제나 머리 나쁜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과 사람을 들볶는 것을 일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윗사람으로 앉아 있다는 점이다. 그 전형이 일본 군국주의자들이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일본 육군이 제시한 병사의 값은 2전5리로 당시의 엽서 한 장 값이었고 소총이나 군마를 구입하는 데는 약 500엔으로 인명의 2만 배에 해당했다. 이런 계산법에서 나온 것이 돈 한 푼 안 들이고 동원할 수 있는 후방의 노동력이었으며, 그 안에는 잠자리나 잡으러 다니는 아이들의 젖 먹은 힘까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동북아시아를 하나로 만든 것이 세한삼우의 ‘소나무’였다면 그 아시아를 산산조각 낸 것은 소나무 뿌리를 캐낸 대동아전쟁이었다. 우리는 우리 땅을 지키지 못했기에 이 땅에 뿌리박은 소나무도 지킬 수 없었다. 소나무야, 세한삼우야,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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