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6일 현충일
과거의 동지들이 충현탑 앞에 모였다.
많은 유가족과 향군 단체들의 대표가 분향을 하고 가신 님의 넋을 위로 했다.
계절을 앞서가는 한 여름의 더위 속에 내가 입은 검은 양복 속에서도 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나는 가끔 새벽에 차를 타고 나갈때 !
새벽5시에 흘로 나오는 라디오 방송의 오프닝 곡과 방송을 알리는 멘트에 눈물이 날때가 있다.
피아노 연주에 아이들이 애국가를 부르고
이여서 여기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방송되는 MBC 문화방송이라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전율을 느끼며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저 멀리 낯 설은 외국의 타향도 아니면서
대한민국 한 복판에서
애국가를 들으면
눈물이 나는 사람이 있을까?
분향을 마친 후
선,후배 동지들이 서울 한남동 HID 특수임무 수행자 유가족회 단체 사무실에 모였다.
그리고 저녁엔 소주가 돌았다.
우리의 건배 구호는
북 파 !
60세의 청년 부터 40세 초반의 아이까지
7,80세의 형님들은 가시고
젊은 동지들의 모임이 이어졌다.
나는 그날 필림이 끊어 졌다 보다.......
그래도 눈을 뜨니 우리집 안방까진 오긴 왔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