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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가 먹 재현사업

아! 조선이여...

조선을 드려다 보면 오늘의 우리를 보는 것 같아 않타갑다.

국가는 있으나 국민은 없었고 양반은 있으나 평민은 없었다.

노론 소론 서인 남인의 권력을 향한 지배계층의 다툼과 반대를 위힌 반대는 서민의 삶을 고달프게 했다.

그 고달픈 삶과 애잔함이 한국의 미, 속에 담겨져 있다.

가녀린 선

투박한 듯 무늬도 없어 보이지만

나름대로 멋을 보이는 절제 미

겉 치장 보단 쓰임에 중점을 둔 공예는 장인의 솜씨를 감탄케 힌다.

고도의 계산된 생략인지 그냥 나온 절제미 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세계적인 디자이너 보다 더한

심플함은 무아의 경지를 느끼게 한다.

그런 조선의 공예와 예술이 전승되어 오질 못한 것이 혹자는 기록의 문화가 없고 배타적인 습성에

기인 한다고 하지만 조선의 정책은  장인의 기술을 숨겨야 했다.

거란 여진과 같은 천민 취급을 했고 급료는 물론 점심도 주질 않아 본인이 스스로 해결 해야만 했다.

조선 후기에 관급 공장에서 민간 사장 제도로 바뀌였지만 지나친 공장세는 장인의 삶을 어렵게

하기는 마찮가지 였다.

조선 왕 중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한 세종대왕 마저도 장인을 사기꾼과 도독놈 취급을 한 발언은

조선 장인의 슬픔을 느끼게 한다.

오히려 임진왜란때 잡혀간 조선의 장인이 일본에서 대접 받고 문화와 예술에서 꽃을 피운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

좋은 기술이 있으면 대접 받기 보단 관급공장의 군역에 시달려 급료 조차 받지 못한 가족들은

가난에 시달여야 했고 양반계층도 마치 종 부리듯이 장인을 데려다 일을 시켰다.

기술은 철저한 봉사 였다.

강요된 봉사였다.

 

그런 사회 속에서도 예술과 공예가 살아 남고 진보한 것은 장인 자신의 희열과 만족감

이였을 것이다.

남들은 알아주지 않을 지언정 본인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명품과의 만남,

적은 임금과 고된 작업 중에서도 자신이 만든 작품의 만족도는 그 어떤 보상보다 값지다.

그리고 어쩌다 작품의 진가를 알아주는 작품의 주인을 만나면 정말 자식을 시집 보내는 것 처럼

시원섭섭 했겠지만 그 만족도가 기술의 진보를 가져 왔으리라 본다.

야나기 무녜요시의 조선 장인론을 보면 일본의 식민지 사관에서 쓴 것을 느끼지만 조선장인의 슬픔과 애잔함을 느낄 수 있다.

값은 싸야 되고 인위적인 기교는 피해야 되고 사욕을 버리라고 한다.

이땅의 장인을 도데체 뭘로 봤는지?

국가도 장인을 천시했는데 하물며 일본학자야 어떻겠는가?

아! 조선이여..

애련의 미가 아니라 절제와 소박

임금은 피난을 했어도 뿌리깊은 민중의 항쟁으로 지켜온 이 나라의 민초들의 강건함이 조선의

예술로 다시 태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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