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깊어갈수록 숲은 무성하다. 엊그제 내린 비는 그 싱그러움을 더할 것이다. 쑥쑥 자라 올라간 황벽나무도 참으로 힘차고 푸르다.
누르면 저절로 탄력이 느껴질 것 같은 수피가 곧게 올라오고 진하고 질기고 끝이 뾰족한 작은 잎을 가진 잎들이 무성하게 달린다. 지금쯤은 동글동글 형태를 만드는 열매마저 푸르다. 갈빛으로 변하여 가을이 무르익으면 열매도 까맣게 익는다.
꽃은 한두 달 전에 피었겠지만 워낙 높이 자라는 이 나무의 자잘한 꽃들까지 섬세하게 기억하는 이를 찾기는 어렵다. 물론 꽃들은 작지만 원추형으로 꽃차례를 이루어 때맞추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구경이 가능하다. 높은 곳에 달리니 다만 우리가 고개를 들어 찾아 보지 않았을 뿐이다.
더욱이 황벽나무라고 하면 유명한 편에 속한 비교적 잘 알고 있는 나무 같긴 한데, 수목원같이 목적을 가지고 부러 심은 곳이 아닌 숲에서 황벽나무를 찾으라고 하면 그리 만만치 않다. 쓰임새가 워낙 다양하여 쓸모가 많은 탓에 수난을 당했기 때문일까?
황벽나무는 흔히 황경피나무라고도 한다.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것이 약재인데 생약명이 바로 황경피이다. 이 나무의 울퉁불퉁한 겉껍질을 벚겨내면 샛노란 속껍질이 나오므로 붙은 이름이다. 약재로 주로 이용하는 부분도 이 노란 속껍질이다. 여기에 함유된 베르베린( berberine)이라는 약성분 때문이란다.
동의보감에서는 담즙을 잘 나오게 하여 간에 독을 풀고 열을 내리며, 신경성 대장염에 좋으며 살균성분은 눈병을 치료하는 등등 수많은 약효가 나와 있는데 특히 위장약으로의 가치는 매우 높게 평가되고 있다. 민간에서는 열매를 먹기도 하는데 이는 당뇨병에 좋다는 이야기다.
속껍질의 염료로도 활용된다. 치자나무처럼 노란빛을 내는 대표적인 염료의 하나인 것이다. 최고로 오래 된 목판인쇄물이라는 국보 126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천년이상 보전될 수 있었던 비법도 바로 황벽나무에 있는데 닥나무로 종이를 만드는 마지막 과정에서 황벽나무 열매의 황색색소로 착색을 하였는데 이것이 벌레나 세균을 막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겉껍질은 나무 중에서 가장 질 좋은 코르크를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더 속에 있는 아름드리 목재는 좋은 가구와 기구를 만든다. 목민심서에도 황벽나무로 만든 장롱이 나온다고 한다.
생활의 소품에도 다양하게 이용한다. 누군가 황벽나무의 겉껍질을 손잡이에 잘 말아 붙여 멋지고 기능적인 손잡이를 만든 것을 보고 감탄한 기억이 있다. 황경피 즉 노란껍질을 잘 가루로 만들어 기름장판을 만들 때 함께 섞기도 한단다. 상상만 해도 근사하다. 노랗고 반질한 장판의 빛깔이며 살충효과 때문에 살을 무는 이런저런 벌레도 막아주면 은은한 향기도 배어나올 것이니 말이다.
황벽나무가 자라는 곳에는 나비도 찾아든다. 흔히 나비라고 하면 키작은 나무에 가득 핀 꽃들을 찾아오는 것을 생각하지만 꿀을 주는 것이 아니고 새잎을 준다. 호랑나비를 비롯한 제비나무, 산제비나리, 대왕팔랑나비, 푸른부전나비 등의 애벌레들이 먹는 잎인 것이다.
시원한 그늘에 몸을 쉬노라며 어느 덧 황갈색으로 단풍든 잎과 구슬같은 열매들이 떨어질 것이고 그때쯤이면 쿠션 좋은 나무에 기대고 앉아 책을 읽는 호사도 한번 누려보고 싶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새봄이 온다면 신비하고 은은한 연두빛 새순과 이를 먹고 자란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어 오르는 모습도 꼭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