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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 공방 자료

[스크랩] 대중을 끌어당기는 디자인을 만들어라 --정연택(명지전문대 공예과 교수)

대중을 끌어당기는 디자인을 만들어라
 

현대를 살아가는 공예가들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문화목표를  설정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겪는다. 기본적으로 생산양식에 있어 수공적인 생산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공방도예가 산업화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문화와 조화를 이루기가 그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산업화에 따른 역작용의 결과로 공예에 대한 문화적 요구가 여전히 존재하며, 그 수요가 어느 정도의 지속성을 가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공방도예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아직도 불안정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현대공예의 예술화 경향은 자신의 진보주의적 주장에 관계없이 오히려 사회적 현실과의 괴리감을 더해 가고 있을 뿐이다.

 

공예가의 생존은 무엇보다 사회적 수요를 증대시키고, 사회와의 기능적 관계를 얼마만큼 밀접하게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대중의 문화적 관심을 이끌어내어야 하며, 일차적으로 생산품의 디자인 향상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점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며, 누구나 바라던 일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쉽사리 그렇지 못하다. 무엇이 그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그 같은 현실적 어려움을 이야기 할 때, 우리는 자신이 아닌 사회에 그 원인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오늘날 공방도예가들의 사회적 생존을 어렵게 만들며, 활성화를 가로막는 원인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히려 문제의 원인이 제작자 자신의 공예의 개념과 기능에 대한 인식의 결여 내지는 일관성 없는 이론과 실천과정에 비롯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오늘날 현 사회에서 공예가 지니고 있는 전제조건과 존재이유에 대한 자기검증이 무엇보다 필요할 때이다. 본 글은 이 같은 이유에 의해서 대중과 사회에 접근하기 위한 문화전략 차원에서의 기술적 문제들보다는 공예가 자신의 내부적 장애요소에 대한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현 사회에서 공예가 지니고 있는 전제조건은 현대공예에 대한 관념적인 인식의 틀에서 비롯된다. 첫째,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기술에서 공예를 분리된 것으로 보고자 하는 것이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기술은 통속적이며, 제자자의 자율적 의지 내지는 독창성이 보호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일반적 기술의 세계에서 벗어나 보다 미적인 기술의 세계로 접어들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공예는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경향으로 나타나게 된다. 예술지향적 공예는 전통적인 기능으로서 장식성과 실용성을 버리고 진리추구를 위한 성전으로 성역화 되어 간다. 둘째, 공예를 현 사회의 일상적인 세계에 대한 문화적 대립항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현 사회는 산업사회이다. 산업사회는 대량생산의 생산 양식이 특징이므로 거기에서 나오는 생산품은 당연히 규격화된 제품이다. 이것은 과거의 수공업적인 생산품과 정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제품과 작품으로 구분을 이루게 된다.

 

현대의 공예가들에겐 일반적으로 자신의 생산물이 작품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대량생산에 의해 획일화된 일상의 세계, 모든 것이 계측 가능한 세계로 환원될 수 있는 일상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대비시키고 이것으로부터 초월하고자 한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경험의 세계를 통해 존재론적 초월의 가능성을 꿈꾼다. 따라서 자연히 공예는 일상적인 생활세계와의 관계보다도 그것에 비판적인 예술적 담론이 대신하게 된다. 제품은 비인격적이며, 비철학적이고 비문화적인 저급한 문화산물로 여겨지며, 작품은 인격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고급한 문화로 인식되어진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양식과 연관된 일상에 대해 특히, 대량소비와 직결되어 있는 현대세계의 일상성에 대한 부정적인 심리가 작용하게 된다.

 

그러나 공예가 근대의 예술적 신화를 통해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초월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단지 시대착오적인 이상주의자의 꿈일 뿐이다. 전지전능할 것 같던 예술적 신화는 이제 그 의미가 상실된 지 오래 이고, 현대는 모든 초월적인 것이 일상적 세계 안에 들어서는 세속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을 해야한다. 요즈음 문화연구의 흐름이 어떠한가를 보라. 과거 문화연구에 관련된 지식인들의 연구대상이 주로 고급문화에 국한되었던 것에 비해 지금은 통속적이고 대중적인, 그리하여 현대의 일상적인 세계와 밀접한 대중문화-영화, 광고, 만화, 대중음악, TV드라마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한 때 지식인들에 의해 문화적으로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대중예술이 우리의 삶을 요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반 퍼슨(C.A. van Peursen)은 문화발전의 단계를 3가지 유형(신화적 사고. 존재론적 사고. 기능적 사고)으로 구분하면서 오늘날 기능적 사고의 시대에는 초월이란 것도 구체적인 일상적 삶에 새롭게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생산관계가 지배적인 시대로부터 오늘날 기능적 사고의 시대에선 무엇을 만드느냐 하는 것보다 그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표상 되고 있으며,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가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예술가나 공예가들에 의해 제작된 문화물이 하나의 구조를 갖추기 위해 관찰자-수용자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화의 의미는 문화를 제작하는 자 뿐 만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자에게 있어 어떤 효과를 일으키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통해 밝혀질 수 있다. 그리고 공예의 문화적 효과와 사용가치의 영역은 일상적인 생활세계와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일상생활 속에서 생산자와 수용자간의 문화적인 상호교류가 열려져 있을 때, 공예문화는 완성되고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더 이상 근대적인 의미에서, 공예를 일상적인 생활세계와 분리시키고자 하는 그 어떤 시도도 경계해야 한다. 일상적인 세계와의 이분법적 대립관계 보다는 그 속으로의 용해와 반추과정을 통해 살아있는 문화로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또한 공예의 기술이 생활의 기능적 범주를 떠남으로서 보다 자율적 정신의 세계를 구현할 수 있다는 생 각도 재고되어야 한다. 기술은 단지 신체의 연장(확장)으로만 보는 것은 실제로 가능하지 않다. 인간은 기술을 통해 자신에게 속한 것, 자신의 내면적인 가능성을 밖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 같은 기술의 정신적 기능이 제한된 기술적 유형에만 국한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적은 없다. 따라서 생활에 필요한 도자기를 제작하는 도공의 기술에는 정신이 부재하고, 화가의 그림 그리는 기술과 같은 특정한 범주의 기술영역에만 인간의 정신이 내재한다는 생각은 극단적인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도자기를 통해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를 언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된다. 과거 생활의 필요성에 의해 제작되지 않았던 도자기가 있었던가? 생활의 필요성에 의한 기술이기 때문에 비문화적이라 과연 말 할 수 있는가? 오히려 그 안에서의 생산활동이 새로운 창조를 맞이하러 나가는 영역으로 볼 수 있다.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일상의 철학과 인식에 관한 주제를 다루는 가운데 다음과 같이 그와 유사한 질문을 내놓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철학적 순수성과 일상적 비순수를 결정적으로 갈라놓아야만 할까?

 

일상을 지혜에 의해 버림받고 유기된 슬픈 운명으로 간주해야만 할까? 아니면 불가피한 저속성, 존재의 안과 밖, 진리의 실추 등이 (그 자체로) 진리와 존재의 속성일까? 그의 결론은 이렇다. 우리에게 열려 있는 유일한 길은 일상의 이중성, 저급성, 다산성, 빈약과 풍요로움을 보여주기 위해 철학에서부터 출발하여 일상을 분석하고 묘사하는 일이다. 그것은 일상에서부터 그 고유의 창조적 행위와 미완의 작품을 끌어내는 혁명적 기도가 될 것이다. 라고 결론 짓는다.

 

현 사회에서 공예에 대한 관념적인 전제조건과 그것에 대한 검증을 통해, 우리는 공예가 일상적인 생활세계에 보다 가까이 접근해야 할 것임을 확인했다. 공예가 개인의 미적 삶이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다는 환영적 믿음으로부터 벗어나 현실의 일상적 생활세계에 적극 개입하여 생활문화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공예가 단지 자기만족에 끝나는 나르시스적 제작행위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사회적 의미와 보편화된 삶과의 긴밀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럴 때 공예의 존재이유는 타당성을 지닐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현 사회의 일상적 생활세계와의 결합을 위해 이제 공예가 공방도예가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오늘날 일상적인 생활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문화의 형태는 대중문화이다.

 

대중문화는 현대산업사회의 문화를 규정 짓는 개념으로서, 그에 의한 문화산물은 대량생산, 대량전달 그리고 대량소비로 특징지워진다. 따라서 공방도예가 일상적인 생활세계와 긴밀성을 유지하고자 할 때 당연히 대중과의 관계 설정이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다.

 

그러면 대중이란 무엇인가? 누가 대중인가?

 

흔히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론적 입장에 위치한 지식인은 대중의 개념을 수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집단 또는 사색의 자세가 결여되어 있는 존재 내지는 비귀족적이고 교육을 받지 못한 계층으로 중하 이하의 노동자 계층 및 가난한 사람들로 지칭한다. 그러나 대중이라는 계층은 실상 그 구성에 있어 매우 다원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대중문화 이론가인 박성봉은 자신의 저서 대중예술의 미학에서 대중문화에 있어 대중이란 용어의 개념을 도시노동자, 소시민 계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군중이라는 양적인 집단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대중은 형이상학을 연구하는 철학자, 밭에 나가 하루를 보내는 농부, 장미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시인 또는 그 밖의 누구라도 대중이라는 집합적 개념에 포함될 수 있다 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대중은 다양한 사회적 계층으로 이루어진 집합체이다.

 

따라서 대중과의 관계설정이 단순히 다수라는 수적 개념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단지 다수를 위한 문화의 실현을 전제로 한 대중에의 접근은 공허한 이념적 망상에 그치기 쉽상이다. 오히려 다양한 계층과 욕구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대중과의 관계설정을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보다 필요로 하게 된다. 먼저, 디자인의 구성과 내용을 제품의 기능성과 장식성에 분명한 초점을 두고 제작해야 한다. 공예제품이 작가 개인의 심각한 주제의식으로 치장된다면 소비의 계층은 자연히 좁혀들 수밖에 없다. 공예란 본래 심각한 문화가 아니다.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생활의 즐거움을 일깨워 줄 수 있는 것이 공예이다. 공예가 미학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다면 그것은 고통의 미학이 아닌 즐거움의 미학일 것이다. 공예가 고통의 미학을 추구한다면 대중은 언제고 외면할 것이다.

 

둘째, 공예품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중문화가 지배하는 오늘날, 과거 생산자 중심주의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작자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소비자를 단지 그들의 무지 탓으로 돌리던  때는 지나갔다. 컴퓨터를 모르는 컴맹이 문제가 아니라 컴퓨터를 쉽게 다룰 수 있도록 제작하지 못하는 제조회사에 책임이 돌려지게 되는 것이 오늘의 사회이다. 오히려 소비자의 요구 속에 객관적 비평이 도사리고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셋째는 작업에 있어 일관성 있는 문화목표를 갖아야 한다. 공방도예가 들 중 자신의 제작물이 지향하고자 하는 문화목표가 일관성이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신의 목표를 순수예술의 영역(작품의 세계)에 걸어놓고, 한편으론 경제적 목적을 위해 실용적인 도자기(상품의 세계)를 제작하고 있는 경우가 그 예이다. 이에 대해 그것이 뭐 그리 문제가 될 성싶은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양쪽 모두를 잘 할 수만 있으면 오히려

능력 있고 좋은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또한 개인의 능력과 자율에 관한 문제이기에 쉽사리 탓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먼저 작업의 이 같은 이중성은 자칫 전문성의 결여를 낳을 수 있다. 더구나 쓰임을 목적으로 한 공예를 속물화된 상품으로 간주하여 폄하시키는 가운데 공예제품을 제작하거나 이를 기피한다면 전문적 발전을 기대하기란 더욱 더 어려워진다. 그리고 사실상 예술작품이라는 것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화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작품과 상품의 이분법적인 구분은 무의미한 것이 된다. 일관된 목표와 그에 따른 전문화가 이루어질 때 보다 공예는 정확한 의미로 대중에게 이해되어지고 수용될 수 있다.

 

오늘날 공예-도자기의 생산 인구는 날로 확장되어가고 있으나 그에 따른 대중적 수요가 뒤따르지 못한 가운데,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대중의 관심을 이끌 수 있는 제품의 디자인이 요구되고 있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디자인상의 문제 이전에 의식의 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디자인의 방법론적 문제보다도 공예와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오늘날 공예의 전제조건과 문화적 상황에 대한 문제를 작은 지면에서나마 다루고자 했다. 앞으로 공방도예와 대중과의 거리 좁히기는 사회적 변화에 의존하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 요구된다고 사료된다.

        

글 : 정연택(명지전문대 공예과 교수)

출처 : 한지하우스 ▶ 한지공예 전문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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